제주도의 여름은 뜨겁다.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명소를 찾아다니는 건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굳이 체력을 소모하며 밖을 헤맬 이유가 없다. 차라리 지하 공간이나 실내 숲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동굴은 여름철에도 섭씨 10도에서 15도 사이를 유지한다. 인위적인 냉방 장치 없이도 피부에 닿는 공기가 서늘하다. 걷기 편한 신발만 챙겨서 동굴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외부 기온과는 완전히 단절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습도가 조금 높긴 해도 찌는 듯한 더위보다는 훨씬 견딜 만하다.
동굴이 답답하다면 숲길 중에서도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구간을 택하면 된다. 제주 전역에 분포한 곶자왈 지대는 나무가 우거져 직사광선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특히 지표면 근처로 흐르는 용천수가 숲의 온도를 낮춰준다. 땀이 날 만하면 그늘 아래서 멈춰 서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경로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굳이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나무가 밀집된 곳이라면 어디든 온도는 확연히 낮다. 남들이 다 가는 곳에서 줄을 서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한적한 숲길을 걷는 게 여행 효율 면에서는 훨씬 경제적이다.
물론 바다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정오의 해변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자외선 지수가 높은 시간대에 해수욕을 즐기는 건 건강에도 좋지 않고 피부만 상한다. 해질녘에 맞춰 바다를 찾는 편이 현명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모래사장의 열기가 식고 바람도 부드러워진다. 밤이 오기 전 어스름한 시각의 바닷가는 낮보다 시각적으로도 보기 편안하다. 무리하게 일찍 서두르지 말고 숙소에서 쉬다가 오후 늦게 움직이는 게 여행의 피로도를 낮추는 핵심 전략이다.
여름 휴가라는 게 결국은 쉬러 가는 것 아닌가. 덥다고 불평하며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는 환경을 이용하는 게 이득이다. 동굴의 서늘함이나 숲의 그늘, 그리고 해질녘의 해변을 적절히 조합하면 된다. 대단한 일정표를 짜느라 머리 쓰지 마라. 동선은 단순할수록 좋다. 하루에 한두 군데만 돌아도 제주의 여름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굳이 무리해서 남들 다 하는 여름 휴가 공식에 자신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라면 한낮에는 무조건 실내나 지하에 머물겠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가장 덜 고생하는 방법이다.